사무실 근처에는 2개 대학교가 있어서 고생이었다. 지하철도 없던 시절 우회도로도 없이 납품업체인 나는 3~4시간 씩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난감하던 때였다. 30분만 늦어도 거래를 하니마니 하던 터라 약속이 하청업체의 생명이었다.
나는 정말 시위나 변고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육이오를 비롯하여 유월은 내 정신적 상처가 되었다.
문학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 생각했다. 그 때는 이런 종류의 글을 제법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어느 날 어떤 분께서“시는 서정이다 서정시를 쓰도록 해라”한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글에 격려 편지도 받곤 했던 터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 한 편 안에는 적어도 이야기가, 단편소설 한 편은 들어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어설픈 지론이었다. 이제 알고 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깨닫게 되었다. 서정도 어렵고 서사도 어렵다. 정말, 제가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 시업이다. 사업이든 시업이든 쉬울 리가 있을까만 정말이지 이렇게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도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하고 싶은 글쓰기도 하고 있다. 생각하면 기적 같다.
여고시절 국어교과서의 그 황홀하던 문장들이 그리워서 보수동 헌책방에 나는 바빠서 못가고 사람을 보냈다. 고등국어 대학국어 있는 대로 사오라 했다. 아뿔싸! 기대는 허사였다. 알고 보니 교과서 바뀐 지 오래 되었단다. 대학국어도 내가 보던 국어가 아니었다. 비싸게 한 아름 사왔지만 모두 폐지로 버렸다. 내가 찾던 것이 없으니 정이 떨어졌다. 차라리 인터넷에서 찾으면 되는 걸 나는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는 거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아름다웠던 경치, 사소한 추억, 깊이 감동되었던 문장들 소설들 이런 것들이 시인들의 양식이다. 그래서 고향과 가족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나보다.
아직도 나는 시를 종이에 써야 한다. 연필로 쓰면 더 좋다. 이리저리 화살표 그어 가면서 A4 몇 장 버려야 시 한편 겨우 완성한다.
제자들이 박두진 선생님께 “나그네가 대표작이지요?”했을 때 “아니다, 대표작은 오늘밤에 쓸 거다.”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에게 크게 들린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시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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