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금 / 김소해
기자명 김광재 입력 2024.01.16 13:51 댓글 0
무엇에 부딪혔나 마을 앞 방음유리벽//충격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퍼진 실금들//저녁놀 얼비친 구름 일순간에 흩어졌다//화폭의 밑그림은 돌멩이가 그린 동심원//새들이 날아간 자리 엇각들의 반짝임//상처도 보석이구나 빛들이 산란할 때
「서서 백년 기다릴 게」(황금알, 2023)
일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현상이나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호기심 가진 눈으로 살피게 된다. 특히 시를 쓰는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순간 포착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실금’도 그렇다. 첫수 첫 줄이 인상적이다. 무엇에 부딪혔나 마을 앞 방음유리벽, 이라는 장면설정을 통해 독자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방음유리벽에 무언가 부딪혔기 때문에 실금이 간 것이다. 화자의 눈에 충격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퍼진 실금들이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실금을 가도록 만든 어떤 힘의 가격으로 방음유리벽이 겪은 통증을 이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녁놀 얼비친 구름 일순간에 흩어졌다, 라는 종장을 등장시켰을 것이다. 다시 화자는 화폭의 밑그림은 돌멩이가 그린 동심원,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새들이 날아간 자리 엇각들의 반짝임을 떠올리다가 상처도 보석인 것을 알게 된다. 빛들이 산란할 때다.
원숙의 경지에 이른 김소해 시인이 또 한 번 이렇게 단단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실금’이라는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고 가늘게 생긴 금에서 인생사의 아픈 면이 잡힌다. 소소한 관찰을 통해 이렇게 심오한 생존의 문제를 형상화하는 일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지 다시금 환기시킨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질문하고 답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시조의 길이라서, 라면서 무겁거나 가볍거나 질문들이 길동무인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듯이 창작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김소해 시인의 또 한 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자. 사랑이 어떤 건지 얘기 좀 해봐 줄래? 센텀시티 첨단 역에 엉엉 울어도 되는 걸까. 최신 폰 스마트차림 욕을 치는 저 아가씨. 사라진 그 시간의 파일을 복구하느냐. 둔덕밭 억새 태우듯 지난날은 불 질러라. 타다가 남은 고갱이 그마저도 태워라. 울어라, 울어서 풀릴 거면 실컷 울어라. 어깨 한 편 기대어볼 모서리가 없거든 내일은 내일의 태양으로 장미꽃을 피워라. 이 작품 역시 ‘실금’처럼 특이한 장면을 전면에 내세워 욕을 하는 아가씨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응원의 말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소리는 그 아가씨에게 전해지지는 않을 테지만 텔레파시로 전달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새로운 시조다. 절망하는 젊은이에게 새 힘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