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조 2024 하반기
<신작>
양자역학
김소해
여기 기도는 바다너머 너 거기에 닿는다
제 새끼 건드리면 십리 밖 어미 꿈틀하듯
창문은 열어두거라 긴 파동의 내 하울링
<감상평>
달빛공장 완월동
김소해
보름달 첫 문장을 완상하는 달의 동네
유곽의 집 나를 헐어 마주한 언덕바지
섣불리 손댈 수 없어
재건축이 밀다 놓친
기미 낀 골목벽화 마른 꽃잎 다시 피워
창녀는 아니지만 어쩌면 광녀같이
불현듯
잃었던 밤을
낡은 꿈을 수선하는
수선공장 톱니바퀴 어둠을 잘게 썬다
당직근무 달그림자 낮의 뒤를 살핀다
녹이 슨
돌쩌귀마다
기름때를 닦으며
ㅡ『서너 백년 기다릴게』(황금알, 2023)
<해설>
이승하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357) 문화뉴스 2024. 1. 3.
‘달을 감상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부산 완월동(玩月洞)에 유곽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김소해 시조시인은 이 짧은 시조 안에 완월동의 역사를 응축해 넣었다.
“유곽의 집 나를 헐어 마주한 언덕바지”는 지금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 곧 다 허물어질 것이다. “낡은 꿈”이라고 표현했는데, 완월동을 그쳐 간 여인 중 몇 프로가 스스로 원해서 그 일을 직업으로 가졌을까. 달빛은커녕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의 그늘이 참으로 짙거늘 오늘날까지 그 그늘에 이 동네가 덮여 있었다니! 이 짧은 시조가 그 긴 세월을 감당한 것이 놀랍다.
이 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