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로서 비극 분야의 개척자인 아이스킬로스〔Aeschylus〕에 따르면 “시간은 모든 것을 야기한다(Time brings all things to pass).” 아이스킬로스의 언급처럼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생성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소멸할 수도 있다. 김소해의 시조는 소박했던 유년의 시간을 “흑백필름”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거나 “저녁이 있는 시간”을 향한 “표정 서툰 계약직”의 용기를 응원한다. 술래를 찾아가는 여정과 신성(新星)을 꿈꾸면서도 현실의 꿈을 견인하는 인력이 뭉클하다. 또한, 꽃잎 하나로 생명의 길을 열어가며 우주를 환하게 밝힌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시인은 가난했던 과거의 기억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여전히 따뜻한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일 수 있는 시간에 주목하는 김소해의 시조를 점검해 보자.
2. 김소해의 현대시조와 우리들의 꿈
별 하나 잡으려고 잠을 팔아 종종거린다
작은곰 큰곰자리 밤하늘 헤매면서
황소좌 독수리좌는
닿지도 못하지만
붐비는 서면대로 고개 젖히고 걷고 있다
어느 별에 숨어 들은 술래를 찾아서
과녁을 눈앞에 두고
화살 자꾸 빗나가는
당신 아직 나와는 눈 맞추지 못한 신성新星
몇 광년 멀리 있는지 꿈꾸기도 감감하여
잔업에 저녁을 놓치는
표정 서툰 계약직
― 「저녁이 있는 시간」 전문
인용한 현대시조는 “저녁이 있는 시간”을 열망하는 시적 화자 ‘나’를 보여준다. ‘나’는 “잠을 팔아” “별 하나 잡으려고” “종종거린다” 잠을 포기하고 꿈을 찾아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과녁을 눈앞에 두고” “자꾸 빗나가는” “화살”과 같다. ‘나’는 “잔업”이 넘치는 “계약직”이기에 “저녁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나’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은하수에 멱 감던 그런 날의 기록이면
끼닛거리 수제비 그마저 즐거움이던
개헤엄 물장구치며
첨벙거리던 물보라
발묵으로 번져와 다시 번지는 시간
수묵의 농담만으로 새가 날던 벌판까지
대가족 틈바구니에
달게 자던 아이는
흑백은 넉넉하여 은하 물 넘쳐흘러
물방울 여기까지 튕겨 와 젖어 든다
가을볕 거풍 철에도
말리고 싶지 않은 것을
― 「흑백필름」 전문
이 작품은 “그런 날의 기록”을, “발묵으로 번져와 다시 번지는 시간”을 소환한다. 시인은 “수제비”로 끼니를 해결하고 “개헤엄 물장구치며/ 첨벙거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대가족 틈바구니에/ 달게 자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수묵의 농담만으로 새가 날던 벌판까지” 마음껏 달렸던 과거를 회상한다. 김소해는 컬러필름이 아닌 “흑백필름”을 도입하여 젖어 드는 기억을 은하수로, 우주로 확장한다. 그녀는 여기에서 영원히 “말리고 싶지 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기도 하다.
돌에 핀 꽃 석화, 할머니가 부른 이름
시장한 탁발 스님 요기 한 점 했기로서니
살생은 무슨 살생이랴
꽃잎 하나 땄을 뿐
― 「굴」 전문
김소해는 시조시인으로서 다양한 스타일의 현대시조를 실험적으로 창작한다. 김소해는 앞에서 살핀 「저녁이 있는 시간」에서 2개의 행으로 1개의 연을 이루면서 전 6년으로 구성하였고, 「흑백필름」에서는 4개의 행으로 1개의 연을 이루면서 전 3년으로 구성하였다. 이번 작품 「굴」은 1개의 행이 1개의 연을 이루며 전 4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시조(古時調)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대시조의 혁신을 추진하는 시조시인이 등장하였다. 김소해는 여기에서 “굴”이 “꽃”임을 알려준다. 그녀에 따르면 “석화”를 먹는 일은 “살생”이 아니다. “꽃잎”을 따는 일은 “시장한” 배를 채우는 일이고 생명을 키우는 일이며 우주를 환히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Leo Tolstoy〕는 자신의 저서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에서 “인내심과 시간은 가장 강력한 두 명의 전사들이다.(The two most powerful warriors are patience and time.)”라고 이야기하였다. 김소해의 현대시조와 민창홍의 현대시를 읽으며 독자들은 시간과 인내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조 「저녁이 있는 시간」에서 “저녁”은 누군가의 시간이자 삶이며 인생을 형상화한다. “저녁을 놓치는” 삶이 아닌 “저녁이 있는 시간”을 희망하는 김소해 시인의 바람이 아름답다. 「흑백필름」에서 우리는 “가을볕 거풍 철에도/ 말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을 기억한다. 그것은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인 영원에 가까운 시간일 테다. 드디어 「굴」에서 생명과 우주를 환히 밝히는 걸 목도할 수 있다.
Contact Us ☎(H.P)010-5151-1482 | dsb@hanmail.net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73-3, 일이삼타운 2동 2층 252호 (구로소방서 건너편)
⊙우편안내 (주의) ▶책자는 이곳에서 접수가 안됩니다. 발송전 반드시 전화나 메일로 먼저 연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