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디 흰 가을 햇살
약손이 되던 날
포개 둔 눈물이랑
장롱 속 상처까지
꺼내어
말리라 한다
옥양목 홑청처럼.
가을햇살이 억새머리에 하얗게 빛무리로 쏟아질 무렵이면 우리네 지친 얼굴에도 넉넉하고 환한 미소가 어린다. 지난 여름 내내 쌓여 온 곰팡내와 축축한 아픔 같은 것. 깨끗이 삶아 빨아서 풀 먹인 옥양목 홑청처럼 눈물도 상처도 가을햇살에 뽀송뽀송 말려낸다. 희디 흰 가을햇살과 옥양목 홑청, 잘 닦아내어 치유되는 맑은 마음. 비유와 이미지가 상큼하다.
언제부터인가 부를 쌓겠다는 경제관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빈곤 상태는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보인다. 시인은 낮게 속삭인다. 가을햇살 그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으냐고. 넘치는 은총의 이 가을에. 전연희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