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해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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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권<시와소금>2020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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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소해 |
조회: 594 등록일: 2023-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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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원고 소라계단 -동광동 김소해 소라고둥 둥근 속을 걸어본 적 있었지 긴 통로 비탈길 돌고 돌아 올라오는 길이야 미로일망정 올라서면 전망 좋은 닿을 곳 갈 곳도 없이 사십 계단 피난시절 그런 때 그럴수록 연서 같은 악보가 있어 못 잊을 경상도아가씨* 기타선율 다시 듣는 돌계단 소라계단 성긴 길을 걸었지만 이제 와 생각나는 막걸리 파전냄새 벼랑은 집들을 업고 저녁 창을 밝힌다 *1951년 박재홍이 불렀던 인기가요 ‘경상도아가씨’ ―《발견》, 2020년 봄호
시 읽기
바닷가의 휴양지가 전망 좋은 저택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에 비해, 항구의 집들은 생활의 때를 덕지덕지 묻힌 채 불규칙적으로 낙차가 큰 골목을 따라 산비탈을 올라간다. 더구나 “피난 시절”에 지어진 집들이 모인 “동광동”의 풍경에서는, 개축이 진행되더라도 한 번 구획된 불규칙적인 경계는 쉽게 변경되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서면 멀리 ‘북항’이 보이는 것은 예전과 다름이 없지만, 바다 쪽으로 매립지를 넓혀가면서 새로 만들어진 평지에는 관공서나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모르는 사이에 도시의 생활권이 산비탈 마을에서 신시가지로 옮겨지면서, 거주를 위한 사적인 공간과 거래를 위한 공적인 공간이 서로 분할된다. 거주형 공간과 업무형 공간을 연결시키는 통로에 “소라계단”과 “사십계단”, “반달계단” 등이 있다. 시 「소라계단」에 나타나는 바, 화자의 성장기에서부터 지속적인 도시 개발과 확장이 이루어졌고 층고가 다른 두 공간은 계단을 중심으로 확연하게 구별되어 왔다. 공간과 장소는 유사한 의미로 쓰이지만, 공간(space)이 지리적, 물리적으로 구획된 범주를 뜻하는 양적인 개념을 갖는다면, 장소(place)는 여기에 인문적 가치가 결합된 것으로 질적인 개념을 지닌다. “돌계단 소라계단 성긴 길을 걸었”던 날들은 나의 허벅지 근육에 각인된 비탈진 기억으로 남아있고, 더불어 “막걸리 파전 냄새”와 같은 서민층의 생활 체취가 물씬 묻어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살아가는 일은 즐겁기보다는 생활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애착의 감정만을 남기는 것은, 생활의 거주지로서 그곳을 떠나서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으며, 사라져버린 유년기와 성장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에서 “벼랑은 집들을 업고 저녁 창을 밝힌다.”고 마무리했을 때, 돌계단을 품은 산비탈 마을이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인격화되면서 생활사의 모든 장면이 동시적으로 몰려나와 함께 추억의 장을 펼친다.
- <시와소금> 2020년 여름호
염창권: 1960년 전남 보성 출생. 199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현)광주교육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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