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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해 시인의 작품읽기

김소해 시인

시집 해설, 예술부산

작성자: 김소해

조회: 779 등록일: 2023-11-25

김소해 시조집 『만근인 줄 몰랐다』작품해설 <o:p></o:p>존재론적 성찰과 극기克己를 위한 기도문 <o:p></o:p>민병도(시인) <o:p></o:p> <o:p></o:p>김소해의 이번 시조집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시조의 원형인 단시조가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조 본연의 정제미가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쓰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여겨진다. 시조에 있어서‘단시조’는 단순히 짧다는 물리적인 단위가 아니라 시조 천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도저한 형식질서라는 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유시가 이 땅에 도입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시조가 이 단시조의 형식질서를 지켜왔기에 우리는 흔히 시조의 원형, 또는 본령이라고 일컫는다. 바꾸어 말하면 거기에는 그만큼 오래도록 지켜낼 만한 가치가 함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o:p></o:p>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도 있다는 걸 <o:p></o:p>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다는 걸 <o:p></o:p>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가을, 허수아비」전문 <o:p></o:p>허수아비는 짐승들을 속이기 위한 사람들과 어리석게도 사람으로 착각해줄 짐승들과의 관계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책일 뿐 허수아비 자체의 자율성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 역할인 가운데서도 왜 빈들에 팽개쳐진 허수아비에게 눈길이 멎은 것일까. 거기에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로‘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에‘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삶을 살아왔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런데 허수아비와는 달리 그렇게 되리란 것을 예상하면서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채‘알면서 제 할 일 끝낸’허수아비의‘저 넉넉한 파안대소’야말로 얼마나 통쾌한 역설이며 자기해소인가.늦가을 들녘에 버려진 허수아비 하나를 보면서 처지를 비관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자기반성과 성찰에 임하는 자세만으로도 김소해다운 시정신의 기저를 읽을 수가 있다. 마지막 구절에 남긴‘파안대소’야말로 자신에게 보내는 또 다른 의미의 위로와 격려가 아닌가 싶다. 그냥 하찮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물상 하나하나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며 자립 내지 자아실현을 위한 관계성을 확장하는 이 같은 자세는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하였던 것일까. 다음의 짧은 시편을 보면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고향을 떠나올 때 따라온 섬이 하나 <o:p></o:p>때로는 느닷없이 덮치던 너울파도 <o:p></o:p>든든한 이두박근 세워 대신 젖던 흠뻑 젖던-「돝섬, 그 섬이 있다」전문 <o:p></o:p>이 작품은 주제나 활용한 시어, 표현기법 등 어느 면으로나 특별할 것이 없다. 시조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기본 구조인 3장은 고사하고 단 한 장에도 서술형 종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 중장이 모두 명사형으로 끝나고 마지막 종장마저도 주어가 없고 종결어미도 생략해버렸다. 그러나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성공수기를 써온 김소해의 작품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돝섬’은 우리나라에 여러 곳이 있다. 초장의‘고향을 떠나올 때 따라온 섬’으로 봐서 남해안의 돝섬을 지칭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 ‘때로는 느닷없이 덮치던 너울파도’로 불안과 공포의 대명사였을 이 돝섬은 그러나 김소해의 정신을 조정하는 에너지원이었다. 고향을 떠나 두렵고 힘겨웠던 세상살이에서 만난‘느닷없이 덮치던 너울파도’또한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마치 예방주사처럼 아무리 심각한 좌절의 순간에도‘든든한 이두박근 세워 대신 젖던’해벽이 있었고 바위섬이 있어 능히 그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지 않았던가.시의 출발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겠으나 자기해소의 과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일상에서 환경이 좋든 싫든, 아니면 현실이 괴롭거나 억울해도 그에 따른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의 감정 표출은 문자로 정리하지 않은 생활자체일 뿐이지만 시의 주된 재료가 된다. 우리가 어떤 재료를 중심으로 요리를 계획하였는가 하는 것은 그 요리의 품격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바로미터가 된다. 그 점에 있어서 김소해의 성장환경은 그의 시조가 나아갈 지향점을 설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o:p></o:p>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빈 집 애처로워 제값이라 팔았는데이상한 거래도 다 있다 고향이 없어진 <o:p></o:p>고향을 잃어버린 남의 동네 서먹하다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덤으로 팔려버렸다 어이없이 밑진 장사 <o:p></o:p>그게 그렇게 고향산천 떠받치는 줄 몰랐다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팔았다 싶었는데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다-「만근萬斤인 줄 몰랐다」전문 <o:p></o:p>이번 시조집의 표제시가 된 이 작품 역시 그에게 필생의 영향력을 행사한 태생지, 고향이 배경이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시편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그가 겪은 실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급격한 서구식 산업사회의 유입으로 밀려난 농경사회를 지켜봐온 많은 이들에게 솔깃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단순히 더 낡아서 비가 새고 쓰러지면 부모님한데도 민망하고 처치하기도 어려울 테니 주인이 있을 때 팔아버린다는 게 이렇게 허탈하고 가슴 후빌 줄이야. 비로소‘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으니 이제 이 일을 어찌하랴. 고향의 소중함을 그 어떤 미사여구로 수식한들 이 진솔한 교훈에 비기랴. 세상에 얼마나 큰 저울이 있어 그의 고향사랑을 잴 수가 있을까.그리고 여기 또 한편의 고향의 시가 그의 감성을 한껏 끄집어내고 있다. <o:p></o:p>곱게 물든 감잎들이 벗은 발 닦는 늦가을 <o:p></o:p>서리 묻은 깃을 털며 누군가 대답할 듯 <o:p></o:p>붉은 감 아직 붉은 나무 <o:p></o:p>꽃목걸이 고요 한 줌 <o:p></o:p>해거름 산그늘 지는 나이가 저물기 전 <o:p></o:p>주소 적고 우표 붙인 감잎편지 시들기 전 <o:p></o:p>그 글씨 읽는 이가 읽는 <o:p></o:p>뜰 안 가득 생의 후편「11월」 <o:p></o:p>이 작품에는 김소해의 감성과 사색의 깊이가 잘 드러나 있다. 부제가‘귀향’이라고 붙어있는 것을 보면 시인이 고향나들이에서 포착한 심상을 반추상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부분적으로 봐도 상당부분 표현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감잎들이 벗은 발 닦는 늦가을’이라던가‘서리 묻은 깃을 털며 누군가 대답할 듯’, ‘꽃목걸이 고요 한 줌’,‘감잎편지 시들기 전’,‘뜰 안 가득 생의 후편’과 같이 전편이 마치 가구佳句의 바구니처럼 신선한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첫 시조집 『치자꽃 연가』이후 고향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여 온 그가 마치 추억여행처럼 들른 11월은 아직 감이 남아 있는 계절이었다. 감잎과 붉은 감과 감잎 편지가 연이어 행간에 오를 만큼 중심에 자리 잡은 감을 사이에 두고 만난 장면은 그러나 예사롭지가 않다.‘산그늘 지는 나이가 저물기 전’에 뭔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듯해서다. 얼른‘주소 적고 우표 붙인 감잎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편지의‘그 글씨 읽는 이’또한 자신이 된다. 11월,‘뜰 안 가득’한 낙엽처럼 자신 또한‘생의 후편’임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메시지도 노정시키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감정선을 장악해버린 묘한 비법의 시편이다.다시 찾지 않으리 당신의 그 무릎 앞 <o:p></o:p>산이 산을 지고 흔들리며 저문 시간 <o:p></o:p>아득히 이날까지도 말을 숨겨 깊어있네 <o:p></o:p> <o:p></o:p>바람길 그 곳이 어디냐 묻지 않겠네 <o:p></o:p>하마 그냥 벌린 입술 달싹도 못하겠네 <o:p></o:p>문이란 그래 열려있고 또한 어디 닫혀있네 <o:p></o:p>의문부호 숨겨둔 채 가까이 오지 말라하네 <o:p></o:p>비탈져 오르는 길 먼 길일까 높은 길일까내 엄두 꺼내기도 전 문이 벌써 산이네-「중산리 가는 길」전문 <o:p></o:p>이 작품 -‘빨치산박물관’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현장기행에서 확보한 관찰을 바탕으로 구성한 시편이다. 우리의 근대사가 남겨준 아픈 이름 가운데 하나인‘빨치산’에 대한 다양하게 노정된 정보가 얼마나 가슴 미어지게 하였으면 시의 도입부터‘다시 찾지 않으리 당신의 그 무릎 앞’이라고 했을까.이런 체험은 아무나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고 싶거나 전도된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최소한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러한 자세야말로 김소해 시인의 심성과 가치관을 읽을 수 있는 시편이 아닌가 여겨진다.지금까지 김소해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만근인 줄 몰랐다』의 첫 번째 독자로서 전 편을 읽는 안복을 누렸다. 그리고 그 독후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원고 들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자신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내면적인 물음’에 대한 해소 방법의 강구와 존재론적 성찰, 그리고 감사와 기도로 구성된 현재진행형 자서전이라 하겠다. 물론 그 자서전은 지극히 개성적이고 울림 또한 깊다.그가 운명처럼 다루는 핵심 장르는 시조에 국한된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보수적이며 전통성에 잇댄 단정한 품성과 삶의 자수성가형 운용방식이 선택한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는 목표지향형의 뜻을 세우고 삶이 허용하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그 목표지점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거듭 실천해 왔다. 이른바 목표준거형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같은 자세가 민족시 천년의 결과물인 시조와 호흡이 일치되었던 것이리라. 그러기에 그의 시조는 율격이나 외형미에서 고전의 가치질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경전의 한 구절을 해석한 것처럼 깊고 진한 공감의 생명력을 지녔다. 예술부산 201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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