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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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해, 그대, 어머니여(명지대학교: 명대신문, 1981)., 12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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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영지 |
추천: 0건
조회: 4607 등록일: 2016-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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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에 신랑 앞세우고 삼 뿌리로 신행 온 안 해가 되더니 석 달에 실린 시집은 꿀단지로 보배단지로 맴도더니 삼년은 길어 곱곱이로 삼신께 빌고 빌더라니 고추 셋 숯 꺼멍 셋 돌 셋을 주렁주렁 새끼줄에 달아 셋 마을 사람들 못 오게 금색이더니 시아버진 조심조심 너른 들로 나가셔 하늘 해를 줄여 땅 속에 씨앗으로 묻으셨다. 드디어 새 색씨는 인삼이 되어 꿀맛이 되어 참깨 맛이 되어 해를 안고서 읽는다 삼 일 만에 해를 그려 석 달 만에 해를 안으며 삼 년 만에 해를 낳아 삼십년인 지금도 안 해 되어 해. 그대, 어머니여 흔히들 달은 여성의 상징이요, 해는 남성의 심볼이란다. 그렇거니 여겼다. 바람이 불고 추운 겨울이다. 썰렁하니 돌아간 학생들의 빈 의자의 줄을 바로 놓다가 햇살이 유리창 사이로 의자에 앉은 것을 보고, 그 따스할 것 같은 빈 의자의 자리를 나도 몰래 앉았다. 따스함. 이제 나이가 들어 어머니를 떠나 있다. 벌들이 잉잉 거리며 아카시아 꽃잎의 단 맛을 모으고 모아 다독거린 꿀을 어머님 큰 벌이 되어 받으시더니, 삼년이 더 걸려야 하는 인삼을 인삼밭에서 길러, 한 뿌리의 가는 줄기라도 다칠까 보아 긴 꼬챙이로 조심조심 캐어 낸 인삼을 모으시더니, 온 절구를 내어 놓으시고 빻으시더니, 모자랄세라, 따스함이 모자랄세라 시아버지가 하늘의 해를 묻어 지금은 참깨가 돼 있을 들판을 바람같이 빠른 걸음으로 그러나 수줍게 달려가신다. 하늘의 해가 아주 조그만 집 속에 세 개도, 서른 개도 3백 개도 더 들어 앉은 둥그런 해 닮은 참깨를 햇살이 지기 전에 따 들고 종종걸음을 치시고선, 이튿날 한나절쯤 해가 온 누리를 녹여 햇살이 물 위에 반짝반짝 은빛을 내며 맑게 흘러내리는 개울가 냇물에 가셔서, 채를 드시고, 또 씻고 씻고 씻어 따스함만 받아오시고선, 아침 일찍 돌쇠가 일어나자마자 싸리비를 들고 휑하니 싹싹 쓸어 놓은 넓은 마당 한 복판에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신, 그러나 지금은 낡은 돗자리를 툭툭 털어 쭈욱 피어 다시 비로 한 번 쓸고 하늘의 해로 내려앉은 따스한 덩어리의 참깨를 깨끗한 삼배 보자기를 반듯이 편 위에 얇게 피어 말리신다. 행여나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을 돌던 어미 닭이 꼬옥 꼬옥 하고 병아리 새끼에게 멕일까봐 어머니는 아예 방문을 열어 놓으시고 문지방 겨에 앉으셔서 보시다간, 그것도 못 미더워 나오셨다. 들어가셨다. 세1번도 서른 번도… 그 사이 해는 따스함의 두께가 쌓여 따뜻한 열을 내며 말끔히 닦아 놓고 알알이 아주 조그만 해가 된 따스한 깨, 참깨를 만들어 낸다. 기침소리를 어흠 어흠 하며 헛기침으로 집을 울리는 아버지가 갑자기 짚으로 망태를 만들어 그 속에 가득가득 넣어 놓으시는 밤사이 깎은 곶감이 지붕에서 줄을 맞추어 있는 마당으로 내려오는 사이 어머니는 절구통을 들고 나오신다. 고추 잎이 밤사이 하얗게 내린 서리를 맞아 유난히 더 붉은 고추를 방금 마당쇠가 한 짐씩 마당 한구석에 내려놓는 마당으로, 어머니는 새끼줄로 꼰 방석에 한 마리 나비인양 살포시 앉으시고 알알이 해가 들어앉은 참깨를 절구에 넣고 찧기 시작하신다. 세 번을 찧으시고, 다시 세 번을 찧으시고, 인삼, 꿀, 참깨 셋은 어머니가 시집오셔 삼일 만에 신행 드시고, 석 달 만에 친정 가시고, 삼년 만에 시집으로 오셔서 애기를 낳으시고, 이제 삼십년이 넘어선 오늘, 날자를 기억하시고, 햇수를 꼽으시지도 않으셨지만 서른 세 해 이해에 꿀, 인삼, 참깨를 함께 넣어 셋을 한데 모아 절구통에 넣으시고 절구로 찧으신다. 세 번을, 다시 세 번을, 저어기 마당 한구석에 어미 닭이 동이에 담긴 물 한 모금을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먹고 구구구 병아리를 모으는 것을 무심히 보시며, 하늘 한 번 쳐다보시고 절구 한 번 찧고 다시 한 번 쳐다보시고 다시 한 번 찧고 다시 한 번 쳐다보시다가 마침 흰 구름이 하늘 끝 저 먼 곳에서 천천히 넘어가는 것을 보시다가 갑자기 급해지신 어머니는 한 번에 서른 번을 버무린 꿀을 급히 자그만 동이에 넣으시고 어흠어흠 헛기침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나이가 서른이 넘은 아이들 집에 가시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어흠어흠 하시며 약은 석 달은 잠궈야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만 하신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손의 달력을 꼽으시기 시작하신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수스 아흐레 되던 날 밤 기차를 타셨다. 힘에 겨운 보퉁이를 드시고 잠도 설친 채 바쁘고 금하시기만 하다. 겨울 날씨라 몹시 춥고 눈길마저 미끄럽다. 돈을 많이 주고 탈 수 있는 그 많은 돈이야 주머니 깊숙이 들어 있지만 택시를 타실 생각은 아예 없으시다.
따뜻한 아랫목에 요를 깔고 엎드려 어머니는 생각조차 않고 있는 그 환한 발 불보다 더 환한 등불을 다시고 아니 해보다, 더 뜨거운 사랑불을 드시고 계단도 두어 개 씩 짚어 넘으시며 초인종을 누르신다. 해. 그대, 어머니여 따스함 우리창 너머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와 나도 해가 되어, 그대가 되어, 어머니가 되어 일어섰다. 이영지, 해, 그대, 어머니여(명지대학교: 명대신문, 1981)., 12집 부모의 그리움을 떠나서 신랑 집에 온 신부 낯설어서 울면서 지내는 날 어르신 앞마당에다 해를 심어 주시샤 해 안고 돌으시며 별들이 잉잉거린 꽃잎의 아카시아 단맛을 모아모아 큰 별을 받으시느라 삼년이 더 걸리샤 인삼 밭 한 뿌리의 하나의 줄기라도 다칠까 꼬챙이로 조심조심 캐내시어 아직도 모자랄세라 따스함을 넣으샤 들판에 묻혀있을 깨소금 참깨 밭에 세 개도 서른 개도 더 들어 있을 깨를 동그란 해 닮은 해로 탁탁 털어 내시샤 온 누리 녹아 있을 햇살로 반짝반짝 은빛을 맑게 흘려 내리신 시냇물에 사알짝 채를 드시고 따스함만 받으샤 돌쇠가 싸리비로 휑하니 썩썩 써 논 마당의 한복판에 시집을 오실 때에 가져온 낡은 돗자리 툭툴 털어 펴시샤 시집을 오던 날의 햇살의 싱싱함을 지금은 낡아져서 구멍이 뻐엉 뚫린 구름을 쭈욱 펴시고 쓰윽 쓸어 해 속에 앉히고 덩어리의 참깨를 손으로만 해 손에 고루고루 펴시어 하늘 펴셔 당신의 삼베 보자기를 반듯이 펴 놓으샤 얇게 펴 말리시고 행여나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 돌던 어미가 꼬옥꼬옥 넘을까 안절 부절로 마당둘레 보시다 아예에 방문 열어 놓으샤 문지방 곁 거기에 걸터앉아 보시다 못 미더워 아예에 문지방 넘어 살피시는 시어른 코 박고 물 한 모금 입에 문 하늘 한번 물어본 어미닭들 구구구 병아리들 콕콕콕 절구통 세 번 찧고 찧고 또 세 번 찧다가 저어기에 흰 구름 하늘 끝에 천천히 넘어가는 해를 보시다가 갑자기 급해 서른셋 서른 번을 버무린 어머니 아들 딸 들 보고파 보고파도 어른은 꿀 약이야 석 달을 잠겨 얀 단 말씀에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꼽으신 하루가 가고가고 이틀이 가고가고 삼년의 스므아흐레 되던 날 밤 밤잠을 설치시면서 보퉁이에 짐 꾸려 밤잠을 얹은 채로 바빠서 종종걸음 겨울 낮 몹시 춥고 눈길도 미끄러운 꿈마저 넘어 질까봐 조심조심 길 건너 따뜻한 아랫목에 요 깔고 엎드려서 고향을 생각조차 아니 한 그 환한 방 불보다 더 환한 등불 초인종을 누르샤 - 이영지 3일째 「그대 어머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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