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시조의 대화체
이처럼 어른들을 존경하는 것은 가장 잘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이 분에 대한 경어가 일찍부터 성경 본문에서 찾아진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 아니 하실 정도로 이 비유를 존중하여 대화체로 우리들과의 소통을 이루었다. 이러한 연관성은 경이로운 일로 본인의 저서 『물의 신학과 물의 시학』에서 연구한 바 있다. 우리들이 쓰는 말의 대화체 형식과 우리의 오랜 시가들에서 발견되는 대화체는 바로 가장 오래되었다는 황조가에서 유리왕이 그의 계비 치희가 그의 곁을 떠나자 지은 시에서 그대로 들어난다. 그만큼 우리들은 황진이 시조나 김소월 시의 아름다운 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 다음으로 한국인은 일찍부터 어른들을 공경하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시조에서도 그 특징이 그대로 자연발생으로 우리의 시조에 녹아나 그대로 쓰여 진 것뿐이다. 다른 사람 특히 어르신들을 존경하는 리듬은 백제의 근초고왕을 ‘어라하’라 불렀으며 ‘어라’는 그대로 히브리어에서 왕이나 신을 말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어라하’의 ‘하’는 우리의 이조시대 건국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어진 「용비어천가」 125장에서 ‘님금하’로 시작하는 증명이 뒷받침한다. 이들의 증명은 바로 우리의 역사가 5천년에서 드러나는 바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자생된 하나님의 축복 리듬이다.
1. 시조의 대화체
1) 초장: 물아일체와 대화체
시조는 시절가 즉 시절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대화체다. 시조가 자연 발생적이라 함은 시절가 즉 계절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응에서 오는 순환성을 삶의 기본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계절적 감각이 뚜렷하기에 1년 열두 달에 대한 것을 때에 따라 시로서 승화시키게 하는 자연발생적인 대화체를 시조로 나타낸다. 이와 관련한 12구는 12계절의 상징성이 된다. 우선 초·중장의 대립의 리듬과 일 년을 4계절로 한 초장의 경우 봄·여름·가을·겨울의 리듬이 1 · 2 · 3 · 4구에 해당한다. 1 · 2 · 3 · 4구를 사계와 시조의 음악성과 관련시킬 수 있는 이유는 시조의 각 구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초장의 1구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듯 붕 뜨는 봄의 이야기이고 2구는 한 과정을 뛰어 넘으면서 제멋대로 연장되는 여름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며 3구는 가을의 신화와 같이 싸늘하고 외로운 이야기며 4구는 비극의 아이러니인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영원히 살 것을 꿈꾸는 희미한 불빛의 겨울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비유를 기본으로 한 대화체는 시적의미 확대로 첫째 계절적인 순응의 동화로 규정지을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슬플 때는 우는 달로, 즐거울 때는 웃는 달로 쳐다보게 된다. 이것은 자연과 나와의 동일성이 되는 것이 되어 물아일체가 된다. 따라서 자연과 나는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금강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 이은상, 「금강이 무엇이뇨」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근 원구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 이태극, 「서해상의 낙조」
어떻게 태어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물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다니
- 장순하, 「앵두나무논」
어떻게 태어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물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다니
- 장순하, 「앵두나무논」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뷔 너도 가쟈
가다가 져무러든 데 드러 자고 가자
곳에서 푸대접하거든 닢헤서나 믁고가자
무명
청산은 엇데야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엇데야 주야에 긋지 아니?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호리라
- 이황
말 업슨 청산이오 태 업슨 유수 로다
갑 업슨 청풍이오 임믁 업슨 명월이로다
이 듕에 일 업는 몸이 분별 업시 늙그리라.
- 성휘
위의 시조들은 물아일체의 동일성을 전제로 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시조작품이 구전되었다고 볼 때 그 작품 속에는 구전을 가능하도록 하는 어떤 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하더라도 자연을 통해 의사전달이 가능하다는, 즉 마음으로 자연에게 호소하고 그 자연은 그것을 들어주고 대답해 주는 상태의 지경까지 몰입되는 자연과의 친숙성에 있다. 사실 시조작품은 거의 모두 이 자연과의 동일성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시가 뿐만 아니라 현대 자유시에 이르기까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작품들이 대화체임에 비추어 시조 작가들도 이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해는 그 비평 방법 및 연구의 접근 관계가 모방론에 해당한다.
2). 중장: 균등과 불균형의 대화체
중장에서는 초장의 대립인자에 의하여 1·2·3·4구가 계절의 역순인 겨울 · 가을 · 여름 · 봄의 순서가 된다. 따라서 음악성을 지닌 시조와 관련하여 보면 1구가 아득한 절망적인 어려움의 겨울이야기, 2구가 가을의 낙엽처럼 구르는 이야기, 3구가 마냥 늘어지는 이야기, 4구가 떠올랐던 기러기가 휑하니 돌아와 앉는 상징성으로 비유된다. 이때 본래의 지켜져야 할 바람직한 대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인간의 꿈이 깨어진 만큼의 희망적인 이미지와 본래의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역설적 구조이다. 나는 이것을 좌우 균등성이라 해본다. 여기에는 변질된 자아와 변질된 대상과의 대화가 있게 된다.
또한 흰 얼음과 검은 색을 칠판 얼음에 대한 느낌의 차이가 다르듯이 보이는 사물의 그 자체를 통해 직감하는 차이가 다를 수도 있다. 이것은 시각적 관계인데 본래의 존재에는 관계없이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평가에 해당하며 역시 대화의 단절상태가 절망이기에 불균형의 의미가 된다. 나 아닌 대상을 높이는 가장 구체적인 실례는 부모와 자식관계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시적인 은유의 긴장관계를 슬기롭게도 까마귀로 비유하여 시조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때에도 물론 대화체로서 작시조하고 있다. 초 · 중 · 종장의 관계를 보기로 한다.
①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이라
부모 곧 아니면 이몸이 있을소냐?
오조도 반포를 하니 부모 효도 하여라
- 김상용
② 수풀에 까마귀를 아이야 쫓지마라
반포효양은 미물도 하는구나
나 같은 고로여생이 저를 부러워하노라
- 신헌조
③ 뉘라서 까마귀를 검타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긔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 박효관
① 김상용의 시조에서는 초장에서 부모와 나의 친밀한 혈육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한국은 가족 울타리의 친족 개념이 발달되어 있다. 나 아닌 남을 존대하고 지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부모와 나의 '지친' 관계에서만 비롯된다. 따라서 초장은 부모에 관한 장이 된다. 그리고 중장에서는 '이 몸이' 존재하는 것 즉 나의 장이 된다. 종장에서는 '오조'의 은유적 표현을 통해 효도의 길을 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조를 통해 교훈을 제시하고 또한 까마귀로 반포하는 방법에 대한 인간의 감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시학의 논리로 볼 때 효용론 pragmatic criticism이 된다.
이 효는 일찍부터 한국문학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처럼 시조 작품 내에서 '까마귀'의 효용론적 문학표현에 의한 많은 회수의 빈도로서 작품화 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작품적인 특징에 성과에 대한 기쁨으로 투영된다. 따라서 초장에서 부모와 자식사이의 지친관계가 효이고 종장에서도 오조의 반포를 전제로 한 효가 되어 있음으로서 중장의 나의 존재와 관련된 좌우 균등의 구조에 있다. 동시에 초장이 부모의 장, 중장이 나의 장, 종장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공 개념에 있게 된다. 이러한 시조의 특징은 효를 전제로 한 기쁨의 확대 개념 즉 배수로 늘어나는 효의 장이 된다.
② 신헌조의 시조에서는 초장에서 '아이야'를 전제로 이 아이는 세상 사람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불효를 하고 있으면서도 효를 행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꿈을 표출하고 있다. 반면 중장에서는 '반포효양'을 하는 미물이 까마귀 ‘오’와 등가물로 대치되면서 초장과는 전연 다른 장의 자리가 된다. 즉 사람이 아닌 '미물'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할 수 없는 효를 행하고 있는 현실성이 강조된다. 이처럼 시의 역설로 되는 초 · 중장간의 의미는 사실 인간이 효를 행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성이다. 사람을 미물 까마귀에 대한 교훈적인 대상을 '아이야'라는 세상사람 혹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통해 대화체로 표출한다. 그런데 종장의 '나 같은 고로여생'은 초장의 '아이야 쫓지마라'라고 하는 불효의 구조와 등가 관계에 있다. 따라서 신헌조의 시조가 지닌 대화체는 중장의 '반포효양'하는 '미물'인 까마귀를 중심으로 초장의 '아이'와 종장의 '고로여생'이 좌우 균등의 리듬이 되어 있다. 이 시조는 인간들의 불효에 대한 시조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효'에 대한 갈등은 오감도에서도 이상이 그의 시 제목을 '오…'로 할만큼 심각하다.
③ 박효관 시조는 초장에서 까마귀의 겉모양이 문제시 되고 있다. 그것은 까마귀가 겉모양은 검지만 그것을 문제 삼아 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또한 종장에서도 사람이 새만 못함을 뜻하는 것은 역시 표현론의 등가관계이다. 한국말은 나와 너와 상황의 삼각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관논리를 지닌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상황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때문에 나와 너만의 단 둘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삼각관계인 우리의 관계가 성립된다.
이것은 곧 시조가 3장이 되는 것과 연계된다. 때문에 박효관의 시조의 경우에도 한국말이 지니고 있는 첨가어적인 즉 '까마귀가 검다마는'의 '마는'의 의미가 강조된다. 따라서 초장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검다고 하는 까마귀를 겉이 검다는 것만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중장에서 실제적인 '반포보은'의 까마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종장에서는 일반 사람의 불효가 강조된다. 이러한 시조가 주제로 하는 것은 초 · 중 · 종장의 중장을 중심으로 한 좌우 균등관계에 있다.
④ 까마귀 검다한들 속까지 검을소냐
자오반포라 하니 새 중에 효자로다
사람이 그 안 같으면 까마귀엔들 비하리
- 지덕붕
⑤ 까마귀 열두 소리 사람마다 꾸짖어도
그 새 끼 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
아마도 오중회자는 까마귄가 하노라
- 김수장
시조에서 까마귀와 대화체를 연결 짓는 것은 시조의 시적 긴장관계를 높이 사는데 있다. 즉 이것은 시조 문학적 가치로 상승한다. ④의 지덕붕 시조도 역시 초장에서 까마귀의 겉모양이 검단한들의 '…한들'의 첨가어와 종장에서의 까마귀엔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