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시조에 대한 평론
사랑의 반복
이 병 용
(문학박사, 시인, 평론가)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한밤중 날 부르듯 한 길이 수를 놓아
당신이 훈풍 되듯 명월로 걸어놓아
여인의 햇빛으로 서
바람, 청명
수놓아 - 李英芝 「수: 새벽기도・67」
Ⅰ 들어가며
동서고금의 여인에게서 사랑은 언제나 들이쉬는 생명의 숨결과도 같다 특히 한국 여인들이 갖는 시혼(詩魂)으로 승화되어 인구에 회자하는 바, 나는 그 중에서 상단의 두 시조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근자에 영화와 드라마로 다시 제작된 바 있어 한류의 중심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역사적 인물 황진이(黃眞伊)는 무릇 예인(藝人)의 본보기이다.
16세기 유교 조선에 태어난 황진이의 삶은 일부 시(조)로 남겨져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는 데, 그녀는 위의 시조에서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빼어난 시각적 이미지로 잘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밤’과 ‘달’의 유기적 상상력을 통하여 유감없이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는 우리시대의 여류시인으로 모름지기 李英芝의 시조작품을 빼어 놓을 수 없다.
실제로 李英芝의 연시조인 「꽃상여: 새벽기도・25」의 종장마다에는 “眞伊의 초례마당에 꽃신으로 타다가”, “眞伊의 꽃신 데리고 꽃혼타고 나는 날”, “眞伊의 다홍상여 / 꽃무덤 치마폭 詩 한 수로 꽃상여 나는 날”과 같은 운명적 진술을 통하여 시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두 몸이 한 혼으로 만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시적 묘사가 17세기 영국의 종교적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수사적 장점을 많이 따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시대를 달리하는 두 여인의 시적 상상력의 근간이 되는 여성적 삶의 절제된 긴장이 주는 전통미가 또한 흡사하기 때문이다.
Ⅱ 행복의 관상
李英芝의 평생에 걸친 시작(詩作)은 무엇보다도 종교시의 전형(典型)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 -새벽기도”라는 연작시조를 무려 1570편 쓰고 있다 신앙 형성의 문제를 기도 형식의 연작시조로 형상화한 종교시인 “새벽기도・1~1570”은 신앙과 문학이 일체가 된 오묘하고 힘찬 표현으로 말미암아 한국 시조문학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가 힘든 귀중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시조집으로는 『행복의 순위』(1997),『행복행 내님네』(1998),『일곱 금 촛대 위의 행복』(1999),『행복보라』(2000),『두 천년을 사는 행복』(2001),『키스하지 않은 결혼의 행복』(2002),『하나님의 행복한 연출』(2004)의 일곱 권에 나누어 발표하고 있는데, 그 서두가 「행복의 순위: 새벽기도・1」에서 시작하여 그녀가 목사 안수식을 받는 감격을 토로한 「芝牧 사랑타: 새벽기도・1570- 목사안수식」에서 끝나 있다.
물론 나는 그녀의 기도로 형상화한 창작이 아직도 진행 중일 것이라는 심중(心中)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출간한 그녀의 시조집만을 중심으로 관찰하건데 그녀의 시 세계는 전반적으로 『두천년을 사는 행복』(2001)을 정점으로 하여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주목해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시조집들의 제목만으로 어림짐작하여도 李英芝 시인의 관상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모아진다.
시인의 첫 기도시조집인 『행복의 순위』의 서문에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일들과 시조의 이론과 연관시켜 연구하고 시 작업을 하게 됨에 이 행복의 순간들이 꿈만 같습니다”라는 간단하지만 그녀의 시업(時業) 전체를 총괄할 수 있는 시작 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으로 시인은 ‘하나님에의 연정’을 문학으로 구체화하는 필생의 과업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李英芝는 기독교시인으로 그녀의 삶을 새벽기도와 ‘인간의 개인적인 마음의 행복’을 투시하는 시인 본유의 사명을 합치시키는 시적 순례의 도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시인은 이 고독하고도 기나긴 역정에서 무수한 마음의 편린들 가운데 인간의 행복의 순위를 어느 것에 두느냐를 가지고 고심한 흔적을 아래의 대표적 두 시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1)
달 먼저 떠오르면
해는 달, 따라 나와
달밑에 서서 있는
그 차례 하얀 차례
해는 달
하얗게 웃으면
하얀 웃음
보조개
해 먼저 볼 붉히면
달은 해, 따라 나와
해 밑에 활 활 활
속 차례 분홍차례
달은 해
함께 웃으면
분홍웃음
보조개 - 「행복의 순위: 새벽기도・1」 전문
1-2)
달 아래 달 얼굴이
비춘다 비춰준다
감사해 보았더니
별 얼굴 비춰준다
달빛은 별빛 되어라 달의 얼굴
별
되다
별 아래 별 얼굴이
비춘다 비춰준다
기도해 보았더니
해의 손 닥아 온다
별빛은 햇빛 되어라 별의 얼굴
해
되다 - 「별빛다음: 새벽기도・1364」 전문
위의 연작시조에는 해와 달의 상관적 관계를 서술하고 있지만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발표된 숫자의 차이만큼 그 내용도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1-1)에는 “달 먼저”와 “해 먼저”의 어휘에서 드러나듯이 수평적 관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차례’에 의한 순서가 매겨져 있다.
그리고 “해는 달”과 “달은 해”에서 알 수 있듯이 달과 해는 등치관계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달에 이어 해가 서고, 해에 이어 달이 서는 따라감의 관계로 시적 화자와 그 대상의 관계는 “하얀 차례”, “속 차례”로 상징되는 선후(先後)에 의한 친밀하고 대등한 대립의 관계로 나타난다.
반면에 2-2)에서 “달 아래”와 “별 아래”는 수직적 관계를 나나내는 단어들로 서열적 질서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시인과 시인의 신앙적 대상의 관계는 한층 성숙해져서 그 반응도 ‘감사’와 ‘기도’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되어라’와 ‘~되다’의 인과관계에서 확인되듯이 주종(主從)과 순종의 관계로 나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이 李英芝의 연작시조에서 핵심적 상징으로 나타나는 달과 해의 상관적 관계에 대한 이차적 기의는 시적 화자와 그 대상 혹은 시인과 시인의 신앙적 대상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이 정작 문제 삼는 ‘행복의 순위’는 애초 시적 수사로서 당신과 나의 친밀한 관계가 수평적 관계이던 것이, 점차 신앙적 대상으로서 절대자와 나의 수직적 관계로 구축되어감에 따라 시적 세계가 다소 변모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은 李英芝가 처음에 시인이자 문학연구자이던 신앙인의 태도에서 마침내는 목회자로 거듭나게 되므로 말미암은 어찌 보면 인생의 새로운 전환으로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신앙적 삶의 겸허를 내포적으로 행복의 참된 의미를 초지일관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시심(詩心)이 곧 종교적 구도의 염원임을 보여주는 다음의 작품은 시인의 종교적 자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1)
부름의
흐름 폭을
지나다 여미고도
마지막 꽃잔만을 빙 둘러 다시 촛불
앵두 빛 두 볼을 감싸 빛 새 날까 밤새다
입술로
대답하고
이 아미 봄 숙이고
이 푸른 벽돌에도 흐르는 이 아침을
가슴의 파랑 너울로 흐르도록 봉황새
파아란 눈빛으로
분홍의 속살에도
등 뒤의 먼지만을 한 가닥 털어내는
머나먼 푸른 꿈 익어 봉황새의 청지기
-「청지기: 새벽기도・23」전문
2-2)
수천의 염원만이
훨훨 훨
타 나가며
다스려 은빛나래 엎드려 잠재우는
낚시대
이따금 하늘을 줍는 강태공
열리는 창가에는
즈믄 해 다스려질
금빛보다 더 귀한 부지런 부퍼오는
활화산
과녁 겨냥해
새 공기가 샘솟아 - 「새벽: 새벽기도・78」전문
위의 시조에서 창조주를 섬기는 신앙인의 사명을 “청지기”와 “강태공”으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에는 부름을 받은 청지기의 내면적 태도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시조에 나오는 청지기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꺼뜨려서도 안 되고, 아침을 노래하는 봉황새를 돌보는데 소홀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이 청지기는 영혼을 일깨우는 소임에 항상 게을리 하지 않는 분주하고도 결백한 생활 태도를 견지(堅持)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또한 2-2)에서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나온다. 성경에 본시 어부였던 베드로가 물고기로 육신의 목숨을 잇기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삶을 택한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줍는 강태공”도 주지하다시피 물고기가 아닌 시간을 낚는 대가(大家) 낚시꾼답게 종말이 아닌 영원을 향한 “과녁”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李英芝는 하오(속세)의 번잡함을 무시로 떨치고 어둠의 한가운데서 신앙의 불씨를 지키며 새벽의 여명과도 같은 영원의 행복한 시간을 예비하는 신앙인의 참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Ⅲ 그림자의 치유
李英芝는 어둠의 청지기이고 달을 건지는 강태공의 자세로 지상의 삶 속에서 견인(堅忍)하며 영원의 행복한 언어를 불철주야 단근질해온 노련하고도 성숙한 시조시인이다.
그녀는 최우선적으로 절대자의 존재를 확신하며 종교시인임을 일절 부인하지 않는다. 요한의 복음서 서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