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기독교시학
이 영 지
(문학박사․ 출학박사 시인 시조시인)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일은 몸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일입니다. 이 몸이 살아 있는 동안은 말을 하며 삽니다. 말을 하며 사는 동안은 몸이 춤을 추는 일입니다. 몸이 춤을 추는 일은 몸이 말을 하는 일입니다. 특히 시인의 경우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을 하는 대신에 시로 써서 내는 일입니다. 이 때는 이 세상을 욕하기 보다는 감사함으로 시를 지어 부르지요
시를 지어 부르는 일은 몸이 말을 하는 일을 대신하여 시를 지어 부르는 일입니다.우리가 아는 낙성가가 됩니다. 낙성가라면 집을 지어 감사함으로 이를 기념하며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시를 부르는 것이 낙성가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쉬르-하눅가입니다. 시로 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집안에서 영원히 중심을 잡기를 바라 집을 짓고 그 기념으로 시를 지어 헌시하는 의식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이를 기념하는데 이 때 자신의 잘남보다 부모님 은혜로 혹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시라며 감격합니다. 이 때의 감격은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하여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라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발음은 ‘딜릴테니’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에게 달릴테니 봐 달라는 것입니다. 글자 의미로도 가슴을 졸이면서 간절히 기다리는 바를 들어 주시는 이가 있다입니다.
시를 지어 부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하는 일은 나보다는 그 대상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바로 시인의 가슴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게 됨을 말합니다. 이 기본형은 끌어내다 의미를 지닌 발음 ‘달라’입니다. 바로 한국어에서 가장 많이 말하여지는 무엇을 ‘달라’입니다.
그러면 간절히 달라하여 얻어지는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시인이 늘 갖기를 원하여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고쳐주셨다는 히브리어가 ‘라파’입니다. ‘라파’는 입으로 다 말할 수 있도록 말을 입혀 주셨습니다. 바로 시를 지어 헌시할 수 있도록 시를 입혀 주신 일입니다. 이럼으로써 세상을 향하여 버티며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시인이 버틸 수 있는 모습은 나 보라고 하며 배를 쑤욱내밀고 버티는 모습의 의태어가 동반됩니다. 바로 서서 버티는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현재 시를 지어 부르며 여러 사람과 더불어 즐거웁게 춤을 추는 일입니다. 시를 지으며 사는 일은 요즘 말로 하면 힐링 healing이 된 것이지요. 이 즐거운 날에 시를 지어서 같이 부릅니다.
이 시를 지어 같이 부르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간절히 달라고 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사람이래도 누가 누구에게 간절히 간절히 달라하며 이 얻고자 하여 정성을 기울이면, 밤낮으로 매달리며 행동함으로써 드디어는 이루어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달라고 하는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 대답은 명백합니다. 원하는 것을 그분이 얻게 하여 주시는 거죠. 어느 정도의 해답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드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테니 너는 다만 기쁨으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조건을 내세우십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병을 주십니다. 이 병을 ‘망할레’입니다. 가슴이 뜨끔합니다. 누구나 이 몸이 망하기를 원하지 안하으니깐요. 그리고 병은 또 ‘다할라’ 발음으로도 됩니다. 중병이 든 것은 ‘망할레’이며 아주 죽을 지경까지 중병이 든 상태는 ‘다할라’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너 ‘망할레’하며 물어봅니다. .
이 ‘망할레’와 ‘다할라’의 히브리어 메시지는 바로 슬플 때에 춤을 추게 하셨다는데서 시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곧 병이 들 정도의 슬픔이 있을 때 춤을 추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 춤이 히브리어로 ‘말’입니다. 바로 한국어의 말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아주 귀한 자료입니다. 이 기본형은 ‘내 말’이 됩니니다. 내 몸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에 맞게 시가 춤을 추게 됩니다.
그런데 병과 춤의 역설적인 관계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망할레’ 발음의 병은 끝에 소망사가 붙어 하나님 말씀이 나의 몸 안에 가득차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하나님이 너 망할레 하고 위협주실 때 가슴이 뜨끔하여 아니에요 내 몸안에 하나님 말씀이 가득하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바라는 상태가 망할레입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그 마음이 아주 하나님을 향하여 고쳐주십시요라는 아주 간절한 마음이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병원 문을 드나들지요, 병 언어와 근소한 차이로 구분되는 춤은 하나님 말씀이 내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현재형입니다. 사람이 죽을 지경에 이르면 이미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 가는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목숨이 ‘다할’ 경우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을 고백하거나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 생명 다할 때까지라 합니다. 따라서 병과 춤의 차이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가득 찬 말씀의 차이입니다. 우리들이 늘 말하는 ‘망 할’이라는 말과 ‘다 할’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에서 왔음을 보게 됩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바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발 없는 말이 천리까지 갑니다. 그러기에 입으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말은 춤을 추며 천리를 갑니다. ‘말’은 발이 달리며 춤을 추며 갑니다.
망하고 생명이 다할 지경까지 되면 그 간절한 마음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 말씀이 가득 차 춤을 춥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이 움직이며 갑니다. 생명 다 할 때까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나요. 바로 나를 구원해주신 분의 뜻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다할’은 십자가 지는 마음이 되는 일입니다. 목숨이 다하여 죽는 일은 ‘다할’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지경까지 가는 일은 십자가를 지는 마음이 되는 일입니다.
현재의 불행, 곧 질병이나 어려움에서 하나님이 끌어내시고 고쳐주시고 춤을 추게 하시는 일이 바로 시를 지어 부르며 시 모임을 갖는 일입니다. 그만큼 시인은 중요합니다. 망할 지경을 벗어나 이 생명 다 할 때까지 시를 지으며 사는 생활은 춤을 추며 사는 생활입니다. 신앙인의 경우 바로 시인 몸에 하나님 전을 짓고 감사하며 부르는 노래, 시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아주 깨끗하여 집니다.
이 감사로 몸으로 제일먼저 하나님이 나를 끌어내 주셨음을 감사하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시를 지어 바치며 춤을 추는 일은 시를 지으며 사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하여 시인은 결코 구렁텅이로 내려가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아니 본인이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음부에 내려가지 않게 끌어내주십니다. 이 사실을 그 분은 ‘알라’하십니다. 그러기에 역시 그 분이 해 알리다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해 알리다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을 알리는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리다입니다.
따라서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음부에서 끌어내 주시는 일을 하나님이 알리다입니다.
이제 시를 지어 모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노래 부릅니다. 소크라데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였다지만 ‘알라’하는 명령은 우리의 삶이 혹여 음부로 내려가는 삶이라도 음부에서 끌어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대적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드러난 일로 하여 모인 무리들이 시를 듣고 기뻐합니다. 시도 지어 즐거워지고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힘도 나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분을 9번이나 되풀이해서 시를 지을 수 있습니다.
말이 말씀덩어리가 되기까지
아스라이 하늘 끝에 달리면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을 것은(시 30: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시 30:2)
여호와여 주께서(시 30:3) 나를 끌어내서
육신의 몸을 벗고
말의 몸을 벗고
말씀덩어리 집을 지어서입니다
오늘 이 기쁜 날
여호와를 찬송하며(시 30:4)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시 30:7)
시를 지을 수 이도록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시 30:8)
여호와여 들으시고(시 30:10)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시 30:10)
이 슬픔에서 건지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시 30:12)
9번씩이나 절대자를 죽을 지경까지 부르짖으며 부르다가 몸이 너무너무 몸이 쇠잔하여 무의식 중에 추는 춥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좋은 일을 죽을동살동모르고 하는 일이 춤입니다. 사경을 헤메면서도 몸으로 말을 하며 이 부르짖는 이 울부짖음은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고는 안되지요.
나를 사랑하는 이가 원하셔서
빙그을 몸이 돌며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춥니다
오른손을 잡으시고
오른발로 딛게
왼발을 끌어 내시는 이 따라
춤을 춥니다
오른 손 높이 들어
나를 산이 되게 하신이여
내 산그늘
그늘에 나를 사랑하는 이가 가려지며
눈이 가려지며 얼굴이 가려지자
돌리도로 부르짖나이다
밤새 울음 짓물르며 부르짖나이다
아침에 베옷 벗기고
오른팔로 이끌어 내시매
몸으로 춤을 추자
시가 쏟아져 나오나이다
낙성가를 올리나이다
시 20:1-12
- (20150809) 李英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