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브라함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람 → 아브라함(창 17:5)/ 사래 → 사라(창 1:15)/ 이스마엘 → 이삭(창 17:19)으로 언약하시었다. 하나님의 언약관계는 ‘아비람’의 낮은 경어의미에서 ‘아비라 함’으로 인정하는 의미와 ‘사래’의 산다는 말을 전하는 의미에서 ‘살아’의 현재형으로 바뀌어 진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었다. 하나님의 집 안에서 아비 · 열매노릇으로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써 집 안에서 어른 노릇을 하였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숨 쉴 수 있도록 하시는 (하/ 숨구멍, 숨 쉼)가 더 붙게 하시어 ‘아브라함’이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된 아브라함은 절대자의 약속된 언약에 의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된다. 아담 → 노아 → 아브라함, 이 셋 째 자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지형상으로 아람 땅인 메소포타미아 (현재 이라크/ 알렉산더가 죽은 곳)지역에 오랫동안 거주(창 29: 31)했다. 아람(창 24: 4)에서의 유리하던 곳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 아브라함은 그의 때에 이미 예수님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예수님과 관련된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 56) 하였다.
셋째 사람 아브라함의 물은, 물이 모이어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있다. 물이 하나로 모이어 일어서는 한 곳은 물이 일어서는 때이다. 셋째 자리 아브라함은 강건의 의미이다. 물이 계속하여 일어서는 물 일어섬 ‘봐 이꿈을’은 한국말 ‘꿈’과 같다. 히브리어 쿰이다. 꿈은 계속하여 일어서는 특징을 가진다. 꿈은 물, 말씀으로 지금도 계속하여 일어서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일어난다. 물인 동시에 장소 의미이다. 물의 일어섬 םו֗ק(마콤/ 물의 일어섬)은 마 (마/ 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물이 하나님을 향하여 오르는 곳은 아주 좁은 곳을 통과하여야 한다. 숫자 치로서는 100이다. 물이 아주 좁은 곳을 통과하려면 아주 심히 그를 향하여 눈을 돌리고 있어야 한다. 곧 일어나라 םו֗ק (마콤/ 일어나라) 언어에서 보듯이 위를 향함 וֹ(오)로 하여 안으로 듦 וּ(우)일 때 가능하다. 곧 하나님 안에 들어야 일어 설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신 것은 창세기 17장 5절에서이다. 아브람이 99세(창 17:5)때이고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이 갔다는 뜻, 곧 100에 가장 가까운, 곧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 그 절정의 때이다. ‘아브람’ םאַ(아브람)에게 숨 쉬는 숨구멍, 숨 쉼 (하)를 허락하시어 숨 쉬게 된 아브라함 םאַ(아브라함) ·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 사래 י(사래, 창 17:15)도 사라 ה(사라, 창 17:15) 이름이 보여주는 ‘살아’이다. ‘사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살아’라는 말이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숨을 쉰 사라는 살아서 아들을 낳았다(창 17:19). 창세기 17장은 성경의 신비스러운 숫자 17과 관련된다. 일어나 םו֗ק (마콤) 위를 향 וֹ(오)하며 하나님 안 וּ(우)에 드는 때이다.
아브라함의 물은 일어선다. 이 장소 םו֗ק(마콤/ 장소)은 일어나다 뜻이다. 경북 영주시 부석지방에서는 ‘마카’라는 말이 있다. 전부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םו֗ק םו֗ק (마콤 마콤/ 그 곳, 민 32: 2)이 반복리듬을 가진다.
(1).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아브라함의 물
이 장소는 불 분리 전치사 멤 מ[םי(멤)]이 처음에 와서 예시하듯이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로 돌아와서 사환과 함께 떠나는 장소는 아브라함이 일어서는 וּמ(바야쿰무/ 일어서는, 창 22: 19) 곳이다. ‘봐 야 꿈’이 일어나서 םוּק(야쿰/ 일어나서, 신 13: 2) 행하는 일을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에게는 일어나게(신 13: 2)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 ‘내가’ 세우는 일 םיאָ(아킴/ 세우는 일, 창 17: 21)이다.
이 일어남의 시기는 새벽이다. 이 일어남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서만 연결되는(창 26: 28~33)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 드리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단인 그 곳으로 들어갔을 때이다. 바알의 세력을 하나님이 격파시키시는 곳에서 아브라함은 물, 곧 말씀으로 일어선다. ‘일어나 떠나’ ‘봐 야 꿈으로’ וּמ(바야쿰무/ 일어나 떠나, 창 18: 16, 22: 19)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알려주신다(창 18: 16).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일어난(창 22: 19)일의 장소는 민수기 2장에서 제시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무를 장소는 일어서는 곳이다. 이곳에는 물이 있다. 물은 히브리어로 ‘할례’이다. 한국어에 ‘할레’라고 의견을 묻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 ‘물’ לוּמ(물/ 할례)이다. 하나님은 물 안에 존재가 들어오라고 명령 할례를 받으라 למּ למּ(힘몰 임몰, 창 17: 10, 13, 17:13) 반복하신다. 할례를 받으라는 리듬은 구약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예표 ‘물’이다. 이언약을 세우는 יי(베리티, 창 17: 4) 일이다. 기본형 언약 תי(베리트)는 하나님의 집 안 (베)에서 하나님 머리 (리/ 머리)만 하실 수 있다. 이 집안은 하나님 안이다. 하나님이 일어서게 하시는 일을 올레손(John Peter Oleson)은 “Well of the Oath”를 아브라함이 “Well of the Seven”(창 21: 31)으로 바꾼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암양 일곱을 주고 아비멜렉에게서 산 이 증거의 장소 이 곳 םו֗ק(라마콤/ 이 곳, 창 21: 31)은 브엘세바이다. 브엘세바에는 일곱우물이 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 예배드리기 위해 올라갔다. 이 ’올라‘라는 말은 한국어의 ’올라‘와 그 발음이 같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붙들리어 신 엘 올람(el-olam)의 늪에서 벗어났었다. 엘멜(Elmer L. Towns)은 아브라함이 우물곁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해 브엘세바를 사고 우물곁에서 일어섰다. 삶의 습관은 개인의 신화를 낳는다. 이환진은 olam을 “afterworld", 아켈스(Akers, Matthen)는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신을 팔의 큰 힘으로 표시한다 하였다.
(2). 하갈의 우물
열매 맺는 나무는 팔이다.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