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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자 시인

물 한 잔 외 6

작성자: 민문자

추천: 0건 조회: 12836 등록일: 2014-02-25

충성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민문자 
  <o:p></o:p> 
  <o:p></o:p> 
그 환한 미소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 
그 덕스러운 모습 
그 아름다운 마음씨 
  <o:p></o:p> 
이 세상 모두에게 충성했지 
아니 
이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야 
  <o:p></o:p> 
그런데 왜? 
공평해야 하지 않아? 
나도 모르지 
아마도 하늘의 오류일 거야 
  <o:p></o:p> 
어느 날 하도 힘들어서 
딱 한 번쯤 
충성을 덜 했는지도 몰라 
  <o:p></o:p> 
다음부터는 
하늘이 헷갈리지 않게 
더욱 충성할텐데 
내가 사정 한번 해볼게 
  <o:p></o:p> 
  <o:p></o:p> 
추억 
  <o:p></o:p> 
민문자 
  <o:p></o:p> 
친구야 
무심천이 보이느냐 
남다리가 보이느냐 
곤색 교복을 입었던 교대시절 
4·19 와중에 도청 앞마당까지 
스크럼을 짜고 하던 데모 
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울상을 지었지 
  <o:p></o:p> 
학교 기숙사에서 
영숙이의 자취방에서 
생쌀을 먹으며 공부하던 시절 
넷이서 하하 호호 
어울려 다니며 꿈꾸던 미래가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니?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지 
허접했어도 아름다운 추억이었어 
  <o:p></o:p> 
그래도 모두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건강한 신랑들을 맞고 일가를 이루었지 
아이 못난 병신은 없어 다행이었어 
이 세상에 와서 꼭 할 일을 모두 잘한 거야 
그중에 네가 제일 잘했지 
아이들 골고루 낳아 모두 성혼시켜서 
그동안 재롱둥이 손자손녀들 
재미 톡톡히 보는 걸 하늘은 샘이 났나? 
  <o:p></o:p> 
벗이여, 기억하는가 
억수로 비가 오는 장마철 
무주구천동 연화사에서의 
젊디젊은 스님이 아침을 가르는 소리 
‘아~ 목동아~ 아~ 목동아~’ 
지금도 그 목소리 들려온다 
  <o:p></o:p> 
우리 네 쌍의 부부와 아이들 열 명 
열여덟이 밤 벚꽃을 즐기던 창경궁 
열 살을 전후한 개구쟁이들 챙기며 
또 여덟이 제주도 여행을 하던 에피소드 
아! 그리워라 
그 아름답던 젊은 날이여 
  <o:p></o:p> 
어쩌랴 
파뿌리 된 허연 머리 
그 펄펄 뛰던 우리들의 심장 
이제는 쉬고 싶다고 아우성이니 
시간이 없다고 생명시계가 
자꾸만 신호를 보내는구나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을 잘 보듬을 때 
사랑하는 그대여 
너를 좋아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럼 안녕! 
  <o:p></o:p> 
  <o:p></o:p> 
길 
  <o:p></o:p> 
민문자 
  <o:p></o:p>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길을 찾아 헤매었다 
길을 찾다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골목에서 
얼마나 당황하는가 
  <o:p></o:p> 
젊은 날 다정했던 벗 
오늘 입원한단다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길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뻗어 있을까 
  <o:p></o:p> 
수년간 암 투병으로 시들어버린 그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웠던 추억담도 잠시뿐 
  <o:p></o:p> 
희망을 잃은 그녀에게 
나는 길 잃은 미아 
어찌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 울고 싶어라 
  <o:p></o:p> 
  <o:p></o:p> 
기도 
  <o:p></o:p> 
민문자 
  <o:p></o:p>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o:p></o:p> 
마음이 예쁜 벗 하나가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 몹시 아파합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o:p></o:p> 
신이시여 
그녀의 고통을 사르시고 
희망을 안겨주세요 
  <o:p></o:p>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죄 
간곡히 참회합니다 
  <o:p></o:p>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 
예쁘게 받아주소서 
벗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물 한 잔 
  <o:p></o:p> 
기어이 부음(訃音)이 날아왔다 
좀 더 자주 만나러 가야 했을 걸 전화라도 더 자주 해야 했을 걸 더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어야 했을 걸 이제는 아무 소용없는 일 
  <o:p></o:p> 
미안하다 친구야 얼른 약수터로 달려가 
물을 길어왔다 이 풍진 세상 떠나는데 
몹시 목이 탈지도 몰라 
 내 집을 스쳐 지날 때 
창가를 보렴 
물 한 잔 마시고 가 
  <o:p></o:p> 
  <o:p></o:p> 
충성 
  
  
그 환한 미소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 
그 덕스러운 모습 
그 아름다운 마음씨 
  
이 세상 모두에게 충성했지 
아니 
이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야 
  
그런데 왜? 
공평해야 하지 않아? 
나도 모르지 
아마도 하늘의 오류일 거야 
  
어느 날 하도 힘들어서 
딱 한 번쯤 
충성을 덜 했는지도 몰라 
  
다음부터는 
하늘이 헷갈리지 않게 
더욱 충성할텐데 
내가 사정 한번 해볼게 
  
아! 하늘이 무심하구나 
 <o:p></o:p> 
  
조사(弔辭) 
  
정다운 친구 그대여 
기어이 이 세상을 하직합니까 
꽉 잡았던 사랑하는 가족들의 손을 어이 놓았습니까. 
그대 장자의 물기 어린 목소리에 가슴 먹먹합니다. 
왜 그리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갖지 못하였는지 
돈독했던 젊은 날의 우정이 부끄럽습니다. 
꽃피고 새우는 날 모두 놓치고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엄동설한 
그날의 해후가 마지막이 될 줄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대 좋아하는 호박떡과 단감을 가지고 자주 찾아가 만나자던 마음이 
이제 무위로 돌아가 그대 떠나는 오늘에 뒤늦은 회한이 가슴을 칩니다.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우리들의 웃음꽃으로 
항상 긍정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온 그대 
그 몹쓸 병마에 사로잡혀 수년간 투병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하늘이 그대 쓰임이 필요해서 그대를 남보다 먼저 데려간다면 
그 누가 말릴 장사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떼어놓고 서방정토 향해 홀로 찾아 떠나는 길 
내 집 앞을 스쳐 지날 때 마른 입술도 축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라고 
얼른 약수터로 달려가 물을 떠 왔습니다. 
정갈한 청수 한 잔 서창에 올려놓고 그대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에 망연자실합니다. 
부디 이 물 한 잔 드시고 내 부족했던 마음을 용서하소서. 
침잠하듯 조용히 무거운 수심을 다스리며 
순리의 차례를 기다리며 그대를 먼저 보냅니다. 
오늘 그대를 떠나보내면서 평소 베풀어 주던 유덕을 추모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내세의 복이 무궁하기를 염원합니다. 
부디 하늘나라 꽃자리에서 행복하소서. 
삼가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빕니다. 
  
벗 이충성을 떠나보내며 
2014년 1월 19일 소정 민문자 근조<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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