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종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 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 리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 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 납 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1~1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구원은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로만 가능한 것처럼 비추어진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을 외치더라도 구원의 확신에 대한, 내용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바로 허상이다. 아무튼,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먼저 어떻게 믿음을 확증하는가 하는 게 선결된 문제이다. 믿음을 확증하지 못하면 버린 자라고 선포했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가를 알아야 비로소 우리의 믿음은 확증된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이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또한 믿는 자는 그 영생을 현재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믿는 자는 이미 그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인 된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우리를 죄가 없는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누구도 취소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언제나 영원하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브리서 6: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우리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약속의 자녀이다. “그가 영원히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한일서 2:25) 우리 약속의 자녀에게는 영생을 은혜로 주셨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로마서 9:8)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 이미 그 증거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생을 주실 것으로, 바라는 자가 아니고 오직 이미 영생을 주신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확신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1~13)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의 영원함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가졌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가 된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14)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영원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다는 보증의 말씀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데살로니가전서 1:5)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한일서 5:16~17) 갈라디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음에도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유혹으로 인해 사도 바울로부터 책망받기에 이른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라디아서 3: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구원의 확신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스스로 구원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했다고 불안해하는 것은 성경의 범위에서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확신하는 진리를 소개하고 전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베드로 후서 1:5~12)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는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한일서 5:16~17절)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상속자들이 된 사람들은 성령이 가정교사가 됩니다. 세자책봉이 되면 학식이 높은 대신을 세자에게 스승으로 붙여 주듯이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십니다. 당연히 기도를 도우십니다. 아니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피동으로 은혜로 받은 것은 성령이 일일이 파악하게 하시고, 진리를 따라서 능동적으로 간구하도록 하십니다. 이 기도의 내용 중에 형제들의 죄를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이 사망으로 가는 죄를 제외한 어떤 죄든지 보거든 구하라(아이테오)고 명령합니다.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자를 위해 구하는 자에게 먼저 생명을 주신 다음 그에게도 생명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좀 고난도 사역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린도후서 4:10~13)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넘겨주면 그 속에 그리스도가 역사하시므로 그의 생명이 자신의, 몸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사망을 자신이 감당하고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은 그 사람에게 건너가는 고도의 영적인 기술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비밀스러운 사역의 비결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자신을 바꾸는 온유를 터득하고 의가 가득하여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복을 받은 후의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5~7) 죄인들에게 적의가 있거나 얄밉게 보는 사람은 이런 기도를 하기까지는 요원합니다. 끝내 그렇다면 목회를, 하지 말고 농사지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죄인을 위해 기도하면 당시에는 본인이 모르지만, 먼 후일에 자신에 사망의, 짐을 짊어지고 끊임없이 추적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도 한 생명의 탄생은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이듯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한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하신 후에 자신의 목숨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바꾸기 위한 해산의 수고이고 남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불어넣어 죄에서 건져내는 해산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일만 스승은 있지만 아비는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르치려고만 할 뿐 낳는 고통을 외면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보거든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졸라대지 말라는 말입니다(에로타이), 어떤 죄인도 성령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는 구해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약과 음식 먹기를 거부하는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피를 수혈해야 할 위급한 환자가 수혈을 거부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밖에 둔 적그리스도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모범수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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